HOME > 만남의광장 > 참가후기
| 저는 '춘마교'의 '종' 이었습니다.
| 신용수 | 2018.10.31
| 744    

    * 다시 춘천에 서다 *
27일 토요일 저녁 7시 45분 버스는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날씨가 궁금해 하늘을 살펴보니 구름사이로 드문드문 별이 보인다
일기예보에는 정오쯤 비가 내린다고 돼 있던데 괜찮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터미널 밖의 날씨는 남쪽인(전주) 우리동네와는 사뭇 달라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춘천에 발에 들여 놓은 게 딱 3년만이다
일행이(마라톤밴드 회원들) 기다리는 숙소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먼저 온 일행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밤 12시경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사리 잠을 청할 수가 없다

    * 에끌레시아 *
아침식사를 마치고 공지천 운동장으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들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하늘을 바라보는데
 조금 내리다 말겠지 라며 애써 불안한 기색을 감췄다
오전 8시 공지천 운동장에 들어서니 인산인해다
넓은 운동장에는 빈틈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다들 분주하다
응원객들과 달리미들이 5만명쯤 몰려들었으니 그 모양새는 완전히 전쟁터가 따로 없다
"에끌레시아"는 희랍어로 공동체를 의미 하지만 로마 카톨릭에서는 교회를 의미 하기도 한다
한가지 믿음과 목적을 가진자들의 모임. 
내눈에 비치는 군중들의 모습은 마치 춘마교(춘천마라톤교)의 열성 신자들 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춘천은 지리적 여건상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여러모로 불리하다
그럼에도 이 많은 사람들이 경향각지에서 몰려 들었다는 것은 
그들이 춘마교의 열성 신자들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 출발 *
비는 쏟아지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출발이다...
나는 부상으로 2년 6개월여를 달리지 못했기 때문에 기록 미보유자 그룹인 H조에 배정됐다
출발선에 섰지만 출발 소식은 감감했고 
민소매 싱글렛에 반바지 차림인 나는 출발도 하기전에 저체온증이 온 듯 떨렸다
빗 속을 서서히 달리며 조깅으로 몸을 푸는 사이에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우리 그룹도 출발하고 나는 많은 인파를 피하며 빗 속을 달려 나갔다
오늘 목표기록은 서브 포
달리자 마자 마주한 오르막을 가볍게 오르고 10여 키로를 달릴 즈음에 비는 그쳤다
체온은 서서히 오르고 이 정도면 달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던 H조 서브 포 그룹을 만났고
시계를 보니 조금 빠른 키로당 5분25초를 달리고 있었다
그 속도를 유지하며 계속 달렸다 누군가 너무 빠르다는 얘기를 했고
4시간 그룹은 속도를 줄이는 듯 내 뒤로 쳐졌다
그친 것 같았던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빗 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15키로쯤 달렸을까 속도를 약간 줄이며 의암호 건너 산을 바라보니 
정상 부근에 구름이 걸려있고 자욱한 물안개와 어우러진 알록달록한 단풍의 풍경은
금세라도 신선이 걸어 나올 듯한 멋진 경치다 
그간 내가 살아오며 봤던 풍경들 중 단연 의뜸이다
마음속의 상념들을 모두 잊고 이렇게 달릴 수 있음에 행복했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도취 됐던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신매교를 지나 하프를 지날 무렵부터 고질인 햄스트링 저릿걸임이 시작된다
두주먹으로 허리와 엉덩이를 두드리며 달렸지만 저릿걸임은 한동안 계속 됐다
25키로를 지나 춘천댐으로 오르는길...
긴 오르막에 서서히 멘탈이 무너지며 처음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잘 달리고 오세요" 라고 했던 
아내의 말이 떠오르며 오매불망 무사완주 소식만을 기다릴 아내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리 준비해둔 상비 보약을 먹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달리다보니
보약 효과가 나는지 다시 기운이 회복 된 듯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다 보니 멀리 소양2교가 보이고
끝날 것 같지 않던 레이스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 지나온 날들 *
불현듯 2년여 전이 떠오른다...
의사는 '다시는 달리지 마세요' 라며 차갑게 정 없이 짧게 내뱄었다
더는 달리면 안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좌절감에 한숨만 나왔다
쉬는 동안 잦은 음주로 체중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질질 끌고 다녀야 했던 다리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울, 슬픔 이런 단어들은 내겐 사치였다
어느날 참고 참았던 아내로부터 '맨날 술판이냐'는 핀잔을 듣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며 재기를 다짐했다
질질 끌고 다녔던 다리로 운동장 트랙을 걷고 또 걸었다
불었던 체중이 차츰 줄며 아팠던 다리도 회복 기미가 보이는지 발걸음도 가벼워 졌다
처음으로 온전하게 트랙을 달리며 한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소양 2교 *
39키로지점 소양2교...
'다왔다' '다왔다' '힘내자!' 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보지만 피니쉬 아치까지는
지금까지 달려왔던 거리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연도에 늘어선 응원객들의 함성속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힘이 솟아났고
마침내 피니쉬를 통과 했다
신용수님의 기록은 3시간57초01초입니다 라는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며
속에서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 존재의 확인 *
내 나이 쉰 하고도 일곱...
이순을 앞둔 나이에 이보다 더 잘 달려서 무었하랴
3년만에 다시 찾은 이곳 춘천에서 마침내 다시금 나의 존재를 확인 했고
끝없이 계속 될 것 같았던 그 간의 우울과 슬픔을 날려 버리고
가슴벅찬 환희를 맛 보았다
나는 내일도 달릴 것이다.







※ 댓글쓰기는 회원 로그인후 가능 합니다.
황태인
2018.11.01
이끌레시아(희랍어로 공동체인데 로마 카톨릭에서는 교회라는
뜻이란 본문 중 설명)라는 소제목이 눈에 확 뜨입니다.

춘마가 (아침 일찍 출발해야하는 마라톤 출발지로선)
접근성이 비교적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의 신용수 님이 그러시듯
경향 각처의 마라톤 매니어들이 해마다 운집하는 데는
춘마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오죽했으면 춘마교 그러니까
춘마에끌레시아,라셨겠는지요.

오랜 기간의 부상에서 그 부상의
정도가 '질질 끌며 다녔던 다리로'
운동장을 걷기만 했다는 대목에서는
처연함마저 느끼게 합니다.마라톤이 도대체 뭐길래.

'다시 서는 춘천' 소제목에 서린 이 비장미,
'종교'에의 귀의 과정 같기도 하고 마라톤이라는
운동 '공동체'에 대한 경외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용수 님에겐
이 모든 것을 녹여내는
자아실현의 의지로서의 마라톤이었군요.

장기간 부상에 따른
의기소침으로 잦은 술자리와
불어나는 체중 사랑하는
부인의 푸념 섞인 근심을 마침내
재활의지(뛰지는 못해도 걷고 또 걸었다!)로 극복하셨습니다.

다시 선 춘마에서
악천후임에도 종전의 기록과는
현지히 뒤지겠지만,뛸 수 있다는
겸손함이 빚은 썹4라는
놀랍고 행복해하셨던 완주셨습니다.

하루 전 날 저녁
대회 당일 일기를 가늠하기 위해
'딱 3년만'에 보셨다던 춘천의 별,

15km 지점 의암호 건너편 산정상부에 걸린
자욱한 물안개며 구름과 단풍에 경탄하는 대목입니다.
'늘과 바람과 별과 구름'의 축약형으로서의
동주 신용수!

이런 문학성 다분한 가슴이지만
또한 3년간 와신상담의 불의 전차로서
러너 신용수 님이 춘마 피니쉬에서 느끼셨다는 벅찬
환희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영광의 뒤안길에 묵묵히 같이했을
한없이 사랑하신다는 부인께도
노고를 치하 드리고 축하 드립니다.

용수 형님,늘 감사합니다.🦄
수원청개구리 황태인 드림
신용수
2018.11.08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먼저 회원가입과 로그인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도 마다않고 멋지고 훌륭한 댓글을 달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네

달리기가 무었이관데 달리지 못해서 좌절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야 하겠지만 그러자면 하루이틀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고
간단하게 설명 하자면
살아오면서 격어왔던 수 많은 우여곡절들을 달리기로 녹여내고 오늘의 내가 존재하게 만들어준 유일한 도구였다네
세세한 얘기는 훗 날 나누기로 하고
거듭해서 장문의 훌륭한 댓글에 감사드림세
황태인
2018.11.16
밴드나 카톡처럼 댓글 알림 기능이 없기에 답댓글을
다신 줄 지금에야 알게 되었습니다.형님의 답댓글괴는
무관하게 수기 본문을 다시 읽고 싶어서 왔더니...허허.
둥지 같은 멱둥구미 안에 빨갛고 윤기나며
큼직큼직한 전주 모악산 대봉홍시를 발견한 기쁨입니다.

'살아오면서 겪어왔던 수 많은 우여곡절들을 달리기로
녹여내고 오늘의 내가 존재하게 만들어준 유일한 도구'가
달리기라셨습니다.'하루이틀'이 아니라 사흘나흘이면 어떻습니까.
형님의 지난 4년간-제가 어찌 속속들이 알겠습니까만-을
직간접으로 아는 저로선,그것만으로도 듣기를 자청하는 것입니다.

신용수 특유의 너털 웃음과
환난과 희락이 교차할 선굵은 입담에
막걸리와 깻잎전 등속이 곁들여질 텐데
답댓글 첫 줄만큼이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언제곤 함께 달리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
황태인
2018.11.16
위의 제 댓글은 오전에 작성되었는데
그때까지만해도 2018 춘마 수기 수상작 발표가 없었죠.
역시 제 예상대로 수상작으로 선정되셨군요!
용수 형님,제가 형수님 다음으로 기뻐한다는 거 잘 아시죠?

지난 3년간의 역경이
조금이나마 보상 받으셨길 바랍니다.제 인생에
신용수라는 성함 석 자를 알게 되어 언제나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 드립니다.동생 태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