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만남의광장 > 참가후기
| 춘천마라톤 우중주, 더 큰 기쁨의 레이스
| 김창호 | 2018.11.08
| 403    



                                       춘천마라톤 우중주, 더 큰 기쁨의 레이스 


가을이 좋다
가을 정취는 호반의 도시 춘천이 최고다. 
춘천에는 가을의 전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이 있다. 

가을이 오면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것이 있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이다. 춘천거리의 노란 은행잎이 좋고, 의암호와 어울린 가을 풍경이 좋고, 힘들게 마라톤레이스를 마치고 난 뒤에 먹었던 맛있는 닭갈비의 기억이 좋다. 그중에서도 최고인 것은 마라토너로서 풀코스 최고 기록을 이곳 춘천마라톤에서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춘천마라톤 코스가 오르막길이 있어 힘이 들고 기록이 잘 안 나온다고 하지만,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는 춘천마라톤 코스가 나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매력을 더해준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마라톤을 62세 정년 퇴직한 후에도 3년째 계속해오며, 올 해 안에 풀코스 100회를 목표로 의욕을 불태우는 계기도 춘천마라톤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성취감과 자신감이 만들어 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춘천마라톤을 기다리며 가을을 맞이하곤 한다. 

10월 27일 토요일 오후 2시, 아내가 정성스레 싸준 오곡 찰밥과 간식거리를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춘천까지 세 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를 다행스럽게 도로가 정체되는 구간이 없어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일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아침 8시 이후부터 비올 확률이 70% 이상이나 되었다. 일기 예보가 틀려서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보니 다섯 시였다. 더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불을 박찼다. 비가 걱정이 되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아직까지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준비를 마치고 집결지로 향했다. 손바닥을 펴 보니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숨이 나왔으나 어쩔 수 없는 일, 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회 진행을 안내하는 아나운서의 멘트에도 비에 대한 우려와 급함이 묻어 있었다. 풀코스 참가자는 물품을 맡기고 바로 출발선으로 이동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많은 달리미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비는 더 세차게 쏟아지고 있다. 
나는 이른 바 독립군 참가자인지라 출발시간까지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상가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단체 팀들은 자신들이 마련한 텐트 밑에서 완주 의지를 다지고 있었지만 나는 처마 밑에서 웅크리고 하늘을 원망하며 시간을 죽여야 했다.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갔다. 출발시간 5분전이다. 어차피 달려야 할 레이스, 가을의 전설에서 비로 인해 더 좋은 추억거리가 탄생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C그룹 출발 총소리가 울렸다. 많은 사람들이 굵은 빗방울을 헤치며 출발선을 달려 나갔다. 비닐 우의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많은 사람들의 힘찬 발자국 소리가 웅장한 행진곡이 되어 의암호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건각들이 다 모인 이 자리에 나도 한 명의 구성원이 되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쏟아지는 세찬 빗방울도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신발 속에 빗물이 스며들어가 절벅거리기 시작했다. 비닐에 구멍을 뚫어 만든 나의 우의는 금방 목에서부터 가슴 그리고 배까지 빗물을 스며들게 만들었다. 처음은 차가운 느낌이 들었으나 달리는 몸의 체온으로 인해 찬 느낌이 사라지곤 한다.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조건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출발선상에서 다졌던 완주의지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다행스럽게 5km 쯤을 지나면서부터 비가 잦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출발선에서 다진 강한 의욕도 점차 그 약효를 잃어가기 시작하여 10km를 지나고 나니 종아리가 단단해지며 총체적으로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열심히 달린 것 같으나 아직까지 1/3도 달리지 못했고 앞으로 가야할 거리를 생각하니 의지가 약해지기 시작하고 갈등이 몰려온다. 

‘아직도 이것밖에 못 왔어? 스피드를 줄이자 이렇게 가다가는 오버페이스 되어 다리에 쥐가 날 것이다. 오늘은 기록에 신경 쓰지 말고 완주를 목표로 하자. 아니야, 춘천마라톤 기록이 나의 마라톤 대표 기록인데 떨어지면 안 되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적극적 희망적인 나와 소극적 부정적인 내가  여러 명 함께 달리고 있는 것이다. 약해지려는 마음, 타협하려는 마음, 변명거리를 꾸며대는 마음은 분명 나와함께 달리더라도 진짜 본 모습의 나는 아닐 것이다. 진정한 나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통이 극에 달해도 최선을 다하여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나일 것이다. 진짜의 내가 가짜의 나를 이겨낼 수 있도록 지금까지 연습하고 훈련해 온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다져 나가는 동안 20km지점이 눈앞에 다가 왔다. 이제 곧 반이 지나가는구나? 반을 지나면 남은 거리를 죽여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희망적인 생각으로 하프 지점을 통과한다. 

이제 넓은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이 길로 조금 더 가면 최고의 난코스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고 나의 머릿속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잘 왔어. 조금 더 힘을 내. 마지막 골인한 후의 그 기쁨을 잘 알잖아. 그 그림을 그리며 달리는 거야.’ 라는 주문을 외며 소양강 댐 밑의 다리를 돌아 참나무 숲이 반겨주는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총체적인 체력소모를 가져오는 약간의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25km 지점이다. 여기저기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앞에 가는 사람을 보면 느리게 달려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내가 그 사람을 계속해서 따라가기란 여간 힘이 들이 않는다.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지쳐있다는 증거이리라. 

이곳이 최악의 오르막길이다. 경사는 그리 심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달려오느라 힘이 절대적으로 빠진 데다 남은 거리가 주는 부담감으로 인해 두려운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참고 이겨내야 한다. 적어도 마의 34km지점까지는 지금의 이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된다는 내면의 기준이 무거운 나의 발을 내몰고 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완주한 경험의 상식이 앞으로 남은 코스의 최소한의 지침을 마련해 시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목표는 34km 지점이다. 그곳에는 자유발언대가 있고 그것을 핑계로 잠시 쉬면서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숨이 극에 달하는 고통을 경험하고 나면 넓은 도로의 내리막길이 눈앞에 전개 된다. 고통후의 큰 선물이다. 이 내리막길은 극도로 지친 나에게 적어도 2-3km의 거리를 쉽게 해결해 준다. 그 다음에 시작되는 시가지 넓은 길은 또 다시 다리의 통증과 거친 호흡을 선사한다. 34km지점이 바로 눈앞에 있다.  
드디어 자유발언대 앞에 섰다. 거친 호흡과 추운 날씨로 인해 입이 얼어붙은 듯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3년 전 자유발언대에서 직장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가족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아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의 위상이 땅에 곤두박질친 경험이 있었다. 다른 모든 참가자들이 가족의 건강과 화평, 자녀들의 입시와 취업 등 하나같이 가족을 응원하는 멘트를 하고 있는데 나만이 직장 구성원의 파이팅만 외치고 돌아서자 나 역시도 ‘어? 이게 아닌데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족들도 내심 섭섭한 모양이다. 아내가 뼈있는 한마디를 날린다. 
“완전 아부성 발언인데? 당신은 워낙 가정보다 직장이 우선인 사람이니까 당연하지.”  아내의 주장은 직장상사와 동료들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늘 가정을 우선시한다고 말해 오던 사람이 그 소중한 시간에 가족보다 직장이 우선이었다는 것이 섭섭하다는 얘기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가장의 체면을 구긴 그 날이 생각나서 오늘은 가족들을 응원하는 멋진 멘트를 하자는 마음을 먹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짝지 창희, 그리고 내 아들 딸 지영아, 민솔아, 우리 모두 힘내자!!!, 김천강변마라톤 파이팅!” 
직장과 가정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아내와 이제 막 사회에 나간 두 아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자는 의도에서 외친 구호이다.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내 모습과 구호 내용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 머리 뒤끝이 당겨온다. 

시가지의 넓은 도로는 풀코스 막바지에 달리기에 너무나 지루하고 힘이 드는 구간이다.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의 응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나와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라톤 경력도, 풀코스 경험도 그리고 완주기록으로 보아도 이렇게 방황하고 추월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다리만은 중량을 이기지 못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이 탓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4시간 이내의 완주를 목표로 무거운 무릎을 힘들게 들어 올린다. 길가에서 응원하던 한 여학생이 눈을 마주치면서 힘내라는 파이팅을 외쳐준다. 아마 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애처로운 마음에서 특별히 보내준 선물이리라. 
‘그래 힘을 내자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이 시간만 참고 견디면 완주에 따른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겨 내자.’ 

골인지점이 저만치 보이고 있으나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발을 들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옆의 주자들은 뒤에서 누가 밀어주기라도 하듯이 나를 추월하여 매정하게 달려가고 있다. 100m, 50m 10m 드디어 골인지점을 통과했다. 4시간을 겨우 1분 여 앞둔 기록이었다.  

통과하자마자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비록 골인 지점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집에서 누구보다 힘차게 응원하고 기뻐할 가족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나의 자존심과 이 고통은 금방 환희로 승화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우중에서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었던 것이다.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 아직까지 4시간을 넘기지 않는 기록으로 여섯 번째 완주다. 레이스 도중에 겪었던 극한의 고통과 갈등이 한꺼번에 싸악 달아나는 순간이다. 이 기쁨은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최고의 보물이다.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바람 불고 눈 오는 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오르막, 내리막길,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 그리고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등 수없이 많은 역경과 방황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라톤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을 똑같이 경험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 레이스에서는 비가 오다가 그치고 또 다시 비가 오는 과정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더 기쁨과 의미를 더해 주는 레이스였다고 생각된다. 

“왜 뛰니? 너 미쳤니 그 나이에…… 너 그러다가 무릎 다 망가진다. 뛴다고 밥이 생기나 돈이 생기나?” 
주변 친구들에게서 수없이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 ‘너희들은 몰라. 뛰어보지 않고 마라톤이 만들어 주는 멋진 세상을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죽을 것 같이 힘든 고비를 이겨내고 골인지점을 통과하면 지금까지 나의 몸과 마음에서 서성거리던 고통과 좌절 그리고 방황과 포기하려던 마음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성취감, 자신감이 용솟음치며 차원 높은 환희를 향유할 특권을 가지게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골인 지점은 다가오고 있다. 지금의 이 고통은 더 큰 기쁨을 선사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정신으로 살아가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린다. 

오늘 다시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더욱 강하게 불타오른다. 

                                                                    
                                            감사합니다. 춘천마라톤 참가 후기 제출자 김창호 (배번 3059)







※ 댓글쓰기는 회원 로그인후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