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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마는 나의 힘!
| 김영주 | 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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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마는 나의 힘! >
                         -2018.10.28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42.195㎞ 




#1. 대단해!


 마라톤 풀코스 첫 완주를 해 낸 기쁨의 열기가 다소 가라앉은 고요한 밤입니다. 시계를 보니 어느 덧 열시가 다 되어갑니다. 

 여행 삼아 가족을 데리고 1박 2일로 <춘천 마라톤 대회>를 다녀온 길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 예상보다 집에 늦게 도착한 터라 서둘러 후다닥, 집안 정리를 하고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내,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잠 잘 준비도 마쳤지요. 

 ‘어서 첫 풀 완주기를 써야겠는데……’ 
 저는 오늘 드 디 어,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해 낸 터라 그냥 쉬이 잠들기가 아까웠습니다. 
 가족들은 다들 저와 함께 춘천에 다녀오느라 피곤하여 잠든 듯 했고, 저는 거실 마루에 조그마한 스탠드 불을 켠 후, 달리기로 힘들었을 허리를 반듯하게 펴주며 가만히 엎드려 누웠습니다. 그리고선 옆에 놓인 어제 읽다만 책을 집어 들며, ‘오늘 달리면서 바라본 춘천의 아름다운 풍경과 빗속에 이뤄낸 풀코스 완주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쉽사리 대충 쓰기가 아쉬운 글이라, 오늘은 그냥 책을 조금만 읽다가 자고 내일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완주 후기를 잘 써봐야겠다 생각하며 막 책을 펼쳐 두어 줄을 읽어 내려갈 때였습니다. 
 쪼르르, 방에서 자는 줄 알았던 둘째가 나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올해 열 살 난 아들입니다. 아이는 좀 빠른 걸음으로 제 곁에 다가오더니 이불을 들쳐 그 속으로 쏘옥 들어오면서,

 “엄마, 오늘 여기서 자도 돼요?”

 합니다.

 응. 그래. 왜 잠이 안 와? 어서 자. 피곤할 텐데….

 저는 웃으며 아이 얼굴을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이불을 끌어 잘 덮어주었습니다. 춘천에서 돌아오던 차 안에서 누나와 함께 계속, 오늘 본 춘천마라톤의 풍경과 엄마가 달리는 순간을 대단하다며 쫑알거리다 잠시 잠들더니, 그 덕분에 지금은 잠이 잘 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저는 어서 자야 내일 일찍 일어나 학교가지, 라고 말한 후 읽다만 책 속으로 눈길을 돌렸더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토다닥) “진짜 대단하네. 엄마가 완주를 하다니, 진짜 대 단 해~ 엄마는 정말 최 고 야.”

 토다닥.
 제 등에 고사리 같은 손을 올려 장하다는 듯, 아이는 토다닥 제 등을 토닥이면서 이렇게 혼잣말처럼 이야기합니다. 마치 어느 큰 어른이 아랫사람인 저에게 장한 일을 했다고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 주듯이 말입니다. 저는 순간 피식, 우습기도 하다가 이내 가슴 한 쪽이 싸-해 집니다. 뭉 클! 아,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길 참 잘 했구나!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나의 뛰는 모습을 보여주길 정말 잘 했구나!…….



#2. 치타


 근데 뭐가 그리 대단해 보여? 엄마가 비 오는데 달려서?

 문득 저는, 아이의 눈에 뭐가 그리 신기하고 대단할꼬 싶어 궁금해집니다. 마라톤 완주를 끝낸 후 저녁식사를 할 때도, 춘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제가 풀코스 완주를 한 게 너무나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가족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저를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친정식구를 대표해 응원온 대학생 조카까지도 풀코스 완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어떻게 이모가 그 긴 시간을 다 뛸 수 있는 건지 하하 호호, 여러차례 기적같은 일이라고 엄지 척을 들어올려 준 참입니다. 그런데 또, 잠들기 전 혼잣말처럼 저에게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참말로 둘째의 눈에 엄마가 마라톤 완주를 한 게 대단해 보이기는 한 모양입니다. 

 “응 엄마, 나는 엄마가 비가 오니까 엠블을 타거나 그냥 걸어올 줄 알았는데, 엄마를 찾았을 때 엄마가 막 뛰고 있어서 깜짝 놀랬어. 대단해. 진짜 멋 졌 어--. 엄마만 뛰고 있었어.”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걷지 않고 계속 뛰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만난 건 32㎞ 즈음입니다. 골인지점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비도 오고 걱정되어 역방향으로 저를 찾아 걸어내려왔던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만나 좀 당황스러웠지만 반가웠고, 아이들과 만나게 된 그 순간 저는 열심히 단 한 번도 쉬지않고 계속 뛰고있는 중이었습니다. 보통 이제까지의 저는, 어떤 대회이든 달리면서 휴대폰을 가지고 좋아하는 풍경들을 찍느라,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패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풀코스 도전이니만큼 처음으로 휴대폰도 없이 오직 ‘완주’만을 목표로 열심히 뛰었던 유일한 대회입니다. 오히려 이 선택이 제게는 결과적으로 마라톤에 진정으로 몰입하는 즐거움과 달리는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제 가슴에 뜨거운 열정과 파워풀한 힘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응. 엄마. 나는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엄마가 못 뛸까봐 걱정했지. 골인지점에서 기다리는 데 엄마가 안 오길래 어디쯤 오나, 하고 누나랑 걸어내려간 거야. 헤헤. 아  진짜 대 단 해. 엄마가 그렇게 잘 뛰다니. 치타 같았어 치타! 걷는 사람들 사이로 엄마가 달려오는데 진--짜 빨랐어. 다들 걷는데 말이야. 엄마는 최고야! 진짜 대단해.”


 아이의 눈에 5시간 32분을 뛴 엄마의 모습이 ‘충분히 날렵한 한 마리의 치타’ 같았던 모양입니다. 달리기 실력 최고 일품인 ‘일산호수마라톤’ 동호회의 여러 선배님들이 달리는 저를 보셨다면 웃으셨을테지만 말입니다. 


 뭐? 치타 같았다고? 엄마가? 하 하 하. 이렇게 늦게 뛰는 치타가 어딨어? 하 하! 엄마는 완주 시간이 넘 많이 걸려서 사실 좀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은데. 처음이라 시간 조절을 실패한 듯 해. 좀 더 빨리 뛰었어야 했는데. 어쨌든 치타라니 진짜 멋졌나보네. 고마워. 그리 말해주니 엄마가 힘이 나네. 우리 아들 최고~!


 이렇게 말을 마치자 뜻밖에도 아이는,  바로 단호하게 말합니다. 


“어? 아니야 엄마! 시간이 뭐가 중요해? 엄마가 완주했다는 게 중요하지. 시간은 중요치 않아. 완주한 게 어디야?  그게 대단한거지. 대단해 엄마는. 대단해 대단해. 최고야~!”


뛰고 있던 저와 만났던 그 순간이 떠오르는 듯, 둘째의 얼굴 표정에 흥분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아이는 제게 다가오더니 쓰윽, 볼에 뽀뽀를 해 주고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입니다. 



 #3. 가을의 전설을 춘천에서, 42.195㎞로 쓰다. 


 오늘 비가 많이 오고 날이 추워서, 후미를 뛰다 지친 주자들이 대부분 걷거나 느리게 뛰고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계획했던 시간이 많이 오버되어 계속 뛰는 제 모습이 아이의 눈에 한 마리의 치타처럼 날렵하게 돋보였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최고 소득입니다. 아 좋아라!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뛴 보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42.195 풀코스를 완주해 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인데, 아이들에게 치타처럼 멋지게 달렸다는 소리까지 듣다니요. 엄마의 이미지가 멋진 치타러너로서 아이들의 머릿속에 새겨진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제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저에게는 더 필요가 없어진 셈입니다. 


 '춘천 마라톤 42.195㎞!'


 사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저 구절을, 제 머릿속에 가슴에 입에 담아 두었는지 모릅니다. 
 공지천에서 출발하여 오르내리막을 거쳐 의암댐 신연교를 건넌 후, 신매대교에서 계속 올라가 서상대교 거쳐 춘천댐을 돌아나온 후 직선 대로를 달려 소양2교를 지나다 소양강 처녀상을 바라본 후 힘껏 달리고 달려 드디어 골~인! 



 42.195㎞. 그 긴 거리를, 그것도 천둥과 함께 세차게 내리는 비를 다 맞아가며, 젖어드는 빗물에 운동화를 다 털어가며 계속 뛰었습니다.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호흡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 바라본 삼악산의 단풍은 더없이 아름다웠으며, 거리의 노란 은행나무들도 마냥 예뻤지요. 정말이지 원없이 즐겁게 마음껏 뛰어낸 풀코스입니다. 


 아침 9시, 마라톤을 출발 때에는 더욱 더 굵어지는 빗방울과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이 비에 오늘 계속 뛸 수 있을까 다소 염려스러웠지만, 페이스메이커이신 마라톤동호회의  ‘제이케이님’을 선두로 초이스님, 꽃미녀님, 아우라지님, 박경수님과 함께 20㎞ 지점까지 편안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잘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잘 조절된 초반의 페이스 덕분에 나머지 거리를 혼자서라도 멋지게 뛰어낼 수 있었습니다. 


 “준비 됐으씁니꽈아아~~~?” 
 빗속에 메아리치던 마라톤 진행 사회자의 물음 소리가 지금도 생생히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마라톤 대회의 진정한 묘미는 항상 출발 직전에 있습니다. 
 준비 됐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흥분과 설렘으로 오늘의 모든 도전자들이 비가 오거나 말거나 목청껏 “네에에에에에!-----” 하며 함성 소리를 지르던 그 순간, 그 순간의 두근거림은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춘마인가. 가보자 나의 42.195야! 오늘 단 한 번도 쉬지않고 뛰어주마~’ 하며 출발선을 힘차게 박찼던 기억이 지금도 저를 미소짓게 만듭니다. 
 

 더 없이 아름다웠던 삼악산 산자락의 형형색색 단풍들. 15㎞ 지점을 지나갈 무렵 보았던 삼거리 길목의 샛노란 은행나무잎들. 깊이감 있게 흐르고 있던 북한강의 물줄기. 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보이던 알록달록 산들의 신비로운 자태와 안개들. 달리는 곳곳마다 비가 많이 오는 데도 수고해 주시던 수많은 자원봉사자님들, 파이팅 하고 힘차게 외쳐주시던 격려의 목소리들. 비바람에 실려 코 끝에 전해져오는 파스의 냄새들. 마라토너들의 거친 숨소리들. 타닥 뛰던 발소리들.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깊이 제 가슴속에, 비할 바 없는 최고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 춘천 마라톤의 42.195는 오늘이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야 할 그 무엇’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합니다. 


 ‘딱 한 번 만, 이번 2018년도에 춘천에서 딱 한 번만 풀코스를 도전해 완주해 내고 이제 즐거이 조깅으로만 뛰는 달리기로 만족하자.’ 했던 저의 모든 다짐들은 이제 물거품이 되어 저 멀리 총총 사라져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명예의 전당을 상상해 봅니다. 
아름다운 가을날의 삼악산 풍경처럼 ‘명예의 전당’에 아름다이 올라가 있을 제 얼굴 사진과 이름을 상상해 봅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저는 쭈욱, 제 자신을 계속 단련해서 진정한 치타러너가 될 때까지, 더 빠르게 더 즐겁게 아름다운 춘천을 질주하는 행복한 마라토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42.195㎞를 뛰어내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틈틈이 이른 아침과 저녁시간을 쪼개 호수 공원을 달리며 훈련하느라 집안의 제 자리를 많이 비웠는데, 군말없이 지지와 격려를 해 준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장 먼저 완주의 기쁨을 전합니다. 그리고 올 해 4월에 갓 가입한 신입회원 ‘달리는 김작가, 김영주’를 사랑으로 바라봐주시고 오며가며 풀코스 완주를 할 수 있는 갖가지 비법들을 기꺼이 전수해주시고, 일요일 정기모임 때마다 함께 뛰어주신 <일산호수마라톤> 동호회의 모든 회원님들께 풀코스 완주의 영광을 돌립니다. 


 춘마는 나의 힘!


 세상의 모든 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흡 흡 후 후’ 깊은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힘차게 달리고 있을 모든 러너님들에게 큰 박수와 파이팅을 외칩니다. 
 2018년 10월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쓴 가을의 전설이 모든 러너님들의 가슴에, 저 깊어가는 춘천의 가을날 고운 단풍 빛깔들처럼 아름답고 깊게 아로새겨지길 기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앞으로도 영원히, 춘마는 나의 힘!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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